1896년 시작된 파리-루베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자전거 시합 중 하나로 그 시작은 여느 원데이 레이스와 마찬가지로 거점과 거점을 잇는 장거리 레이스였으나, 1차대전으로 인해 생지옥으로 변한 북프랑스의 전장을 따라가면서 ‘북쪽의 지옥’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특히 20세기 들어서 지역 광산들이 폐광되어 점차 낙후된 지역으로 취급받았으며, 19세기 말에는 일반적인 도로 포장 방식이었지만 이후 급속도로 사라진 코블스톤이 상당수 남아있어 아이러니하게도 파리-루베만의 아이덴티티로 남게 되었습니다.

파리 루베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파베/코블스톤 구간. 평지에서 800m~2500m 까지 펼쳐져 있는 이러한 돌길의 섹터는 시속 4~50, 빠르면 시속 60km로 진입하는 선수들이 온몸으로 그대로 충격을 받아내야 하는 구간으로 평지인데도 불구하고 엄청난 파워를 지속해야만 집단의 앞쪽으로 갈 수 있으며, 좁고 충격이 큰 도로에서 사고라도 한번 나면 돌바닥과의 큰 충돌 뿐만 아니라 제때 피하지 못해 집단으로 넘어지는 경우가 심심찮게 있어 경쟁이 아주 치열합니다.

위험하고 고통스러운 파베 섹터에서 최대한 안전하고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일찍 진입해 앞자리를 차지해야 하며, 서로 먼저 들어가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리는 무시무시한 경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나 이런 파베에서는 각종 사고와 더불어 수많은 펑크와 기재고장과도 싸워야 하고, 관중들과 부딪히거나 도랑에 빠지기도 하는 등 변수가 아주 많습니다.

“파리-루베에서 우승하려면 운이 좋아야 하는게 아니라, 불운이 적어야 한다”

참고로 파베는 파리-루베의 약자가 아닌 Pavé 라는 단어로 ‘포장’, 즉 포장도로라는 뜻. 코블스톤Cobblestone과도 일맥상통하지만, 한 때 정식 포장도로로 여겨졌던 곳이 지금은 가장 치열하고도 가혹한 도로가 되었습니다.

첫 코블스톤 섹터는 93km 구간에서 등장하며, 총 29개의 섹터가 이어집니다. 각 파베 섹터는 1~5분 가량 걸리며, 섹터 사이 사이는 보통 20분 안팎이 걸리기 때문에 선수들에게는 무지막지한 무산소/VO2Max 인터벌 후 약간의 휴식시간이 약 150km 넘게 이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19번 트루에 다렌버그의 파베
11번 몽성페벨의 파베

이 중 19번인 트루에 다렌버그 (아렌버그 참호), 11번 몽성페벨, 그리고 4번인 까르푸 드 라르브(숲의 사거리) 3개의 섹터는 별 다섯개 구간으로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구간입니다. 길이도 2~3km로 아주 길고, 돌도 크고 듬성듬성 떨어져 있어 매우 위험합니다.

4번 카르푸 드 라르브의 파베

각각의 5성급 섹터는 레이스의 향방을 결정짓는데, 아렌버그에선 리더급 선수들과 도움선수들을 분리하여 레이스의 첫 결정타가 되며, 몽성 페벨에선 브레이크어웨이를 모두 잡고 리더들이 본격적으로 어택을 나서거나 우승 후보들이 독주를 시도하고, 마지막 섹터인 카르푸 드 라르브(숲의 사거리)에선 마지막 어택, 즉 레이스가 스프린트로 끝날 것인지를 결정짓는 전략적인 지점입니다.

파리-루베의 코블 섹터인 ‘파베'(Pavé) 구간은 총 55km 가량으로, 나머지는 평지이거나 낙타등의 일반 도로를 이용하게 되는 대회입니다. 물론 파베가 레이스의 향방을 결정짓는 주요 결전지이지만, 코블 노면으로 인해 모두가 피로해졌을 때 일반 도로에서 나서는 선수들이 승기를 잡는 경우 또한 많기 때문에 레이스가 시작된 이상 긴장감을 늦출 수 있는 곳은 없으며, 특히 5성급과 4성급 섹터를 진입하기 직전에는 서로 좋은 포지션을 잡기 위해 속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만큼 격전은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파리-루베의 피니시는 전통적으로 500미터의 루베 벨로드롬을 두 바퀴 도는 일종의 트랙 경기로 끝나게 되는데, 독주로 오는 것이 아닌 5명에서 10명 이상의 그룹으로 한꺼번에 피니시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 만큼 트랙 스프린팅 능력 또한 중요합니다.

특히 모두가 260km 가량의 도로에서 수없이 많은 코블 펀치를 온몸으로 맞은 것 처럼 지친 상태이기 때문에, 트랙의 인코너를 차지하고 서로의 스프린트 타이밍을 견제하는 장면은 파리-루베를 완성하는 장면이며, 경험과 스타성을 뒤엎는 전혀 뜻밖의 우승자를 배출하기도 하는 멋진 공간이기도 합니다.

파리-루베 레이스에서 명성을 떨친 FMB 타이어

이와 같은 환경은 선수들 뿐만 아니라 투입되는 장비들 또한 극한을 이겨낼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며, 최악의 조건에서 최상의 성능을 발휘하는 기술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충격을 흡수하기 위한 다양한 프레임 설계와 서스펜션, 그리고 복합 소재의 활용. 여기에 트랙 스프린트까지 기다리고 있는 만큼 강성 또한 확보해야 하는 난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또한 디스크 브레이크가 가장 먼저 활용된 월드투어 레이스이기도 하며, 타이어는 포장과 비포장 모두에서 적절한 공기압을 지녀야 하며 접지력, 내구성까지 그 어떤 것도 소흘히 할 수 없는 곳. 이러한 역경 속의 진화는 엔듀런스와 그래블 장르의 탄생에 상당한 공헌을 할 정도로 수많은 제조사들이 연구 개발을 투입해야 하는 무대입니다.

모든 사이클 레이스가 그렇겠지만, 파리-루베의 또 다른 요소는 바로 날씨. 4월은 북프랑스의 건기에 해당하는 만큼 주로 흙먼지를 뒤집어 쓴 메마르고도 목이 타는 레이스로 펼쳐지지만, 만에 하나 비가 내리게 되면 살아있는 자전거 지옥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19년 파리 루베의 우승자, 필립 쥘베르

우승자에겐 파베를 상징하는 코블 트로피가 수여되는 대회. 그만큼 돌길은 파리-루베의 아이덴티티이자 모든 선수들, 그리고 팬들의 마음 속에 어마어마한 존재감을 지니고 있습니다. 클래식의 여왕으로 불리며 장거리, 코블, 트랙 스프린트까지 그 어떤 대회도 흉내낼 수 없는 파리-루베는 자전거로 겪을 수 있는 고통의 정점에 서 있으며, 알프스로 대표되는 오르막 레이스와는 대척점에 서 있는 아름다운 경기입니다.


이경훈 해설위원

이경훈 해설위원은 ‘피기’라는 블로그 닉네임으로 더 잘 알려진 사이클리스트이자 사이클 전문 해설가로 국내 사이클링의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루비워크샵은 이경훈 해설위원과 함께 자전거에 대한 심도 깊은 컨텐츠, 프로 사이클링에 대한 신선한 시각을 함께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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