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밥(Bob)과 저는 안락함(comfort)을 진동, 피로도, 굴곡, 주파수 응답 같은 측정 가능한 요소들로 세분화해 보려고 앉아본 적이 있습니다. 아마 25가지 정도의 서로 다른 지표를 찾아냈던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완전하게 느껴졌죠. 우리는 그것 때문에 논쟁을 벌였고, 계속해서 새로운 지표를 추가했습니다. 결국 그 작업은 자체적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버렸어요. 안락함이 실재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것이 '경험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타보면 바로 알 수 있는 거죠. 그런 감각을 바탕으로 오랫동안 설계하다 보면, 데이터만큼이나 자신의 직감을 신뢰하기 시작하게 됩니다.”
톰 로디는 20년 넘게 팔리에서 다양한 역할을 맡아왔습니다. 그는 회사의 형성기 동안 밥 팔리와 함께 일했으며, 현재도 팔리의 프레임이 구상되고 평가되며 진화하는 과정에 깊이 관여하고 있습니다. 로디의 관점은 소재와 라이더, 그리고 수년에 걸친 경험을 통해 서서히 드러나는 피드백 루프에 오랫동안 노출되며 형성되었습니다. 다른 이들이 성능을 단편적인 수치로 이야기할 때, 로디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생각합니다. 이번 대화에서 그는 성능의 한 축이지만 측정하기엔 까다로운 '안락함'이라는 영역, 그리고 신체적 경험을 숫자로 환원하는 것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당신의 배경과 팔리에 합류하게 된 경로를 소개해 주시겠어요?
저는 2003년부터 팔리에서 일했습니다. 대학 시절 학비를 벌기 위해 계속 자전거 샵에서 일했죠. 좋은 자전거를 살 돈이 없어서 직접 고쳐 타곤 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내 프레임을 직접 만들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됐어요. 다행히 제 아이디어를 독립 연구 과제로 허락해 주신 예술 전공 교수님이 계셨습니다. 화가였지만 기계적인 것을 좋아하셨고, 올드 부가티를 소유하고 수십 년 전에 수제 스틸 자전거를 사셨던 분이라 ‘장인 정신’을 이해하셨죠.
졸업 후에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90년대 중반에는 자전거 산업이 모두 유럽이나 콜로라도, 캘리포니아에 있는 것 같았거든요. 결국 6~7년 정도 IT 업계에서 일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매사추세츠주 홉킨턴의 데이터 저장 장치 회사로 오게 됐습니다.
하지만 그때도 밤이나 주말이면 지하실 작업실에서 계속 자전거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용접과 납땜을 하고, 기계 가공과 용접 수업을 듣고, CAD를 배웠죠. 9.11 테러 이후 IT 거품이 꺼졌고, 2002~2003년쯤 아내와 저는 휴식을 갖기로 했습니다. 저는 직접 간판을 걸고 스틸 자전거를 만들기로 결심했죠.
힘든 시기였습니다. 당시 스틸 자전거는 사양길이었어요. 수제 자전거의 르네상스가 오기 전이었죠. 혼자서 자전거를 만들고, 팔고, 모든 것을 다 하려니 벅찼습니다. 그때 아내가 현명하게 말했죠. “이미 자전거를 만들고 있는 사람 밑에 가서 배워보는 게 어때?”
피바디(Peabody)에 사는 밥 팔리라는 사람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가 타일러 해밀턴(Tyler Hamilton)의 자전거를 만들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죠. 파트타임 구인 광고를 보고 찾아갔고, 그렇게 시작된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졌습니다.
팔리가 다르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이 있었나요?
완전히요. 밥이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설명해주고, 그 자전거를 처음 타본 순간은 마치 영화 인디아나 존스에서 성궤를 열거나 펄프 픽션에서 가방을 열었을 때 같았습니다. 저는 이미 초기 카본 자전거를 많이 타봤지만 솔직히 별 감흥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그 주행감은 마치 미래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낭만적으로 생각했던 스틸이 더 이상 정답이 아니라는 걸 즉각 깨달았죠.
기존에 알던 자전거들과 비교했을 때 무엇이 달랐나요?
당시에는 일종의 '트레이드 오프(보상 관계)'가 있었습니다. 알루미늄 자전거는 매끄러운 도로에선 단단하고 빨랐지만, 노면이 나빠지는 순간 끔찍했죠. 스틸이나 티타늄은 안락함과 생동감이 있었지만 무게와 강성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밥의 자전거는 그 모든 상충하는 요소들을 다 잡아냈습니다. 카본처럼 가벼우면서도, 필요할 땐 단단했고, 스틸처럼 안락하고 생동감이 있었죠.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그러면서도 당시의 어떤 자전거보다 훨씬 가벼웠습니다.
그게 저에게는 ‘삼박자(trifecta)’가 맞았던 순간이었습니다. 그게 정상이 아니라는 걸 알 정도로 저는 자전거를 충분히 타본 상태였으니까요.
초기 카본 자전거들이 주행감이 좋지 않았던 것에 비해, 밥은 어떻게 그것을 성취했나요?
초기 카본 중 상당수는 밥이 "검은 알루미늄"이라고 부르던 것들이었습니다. 가볍긴 했지만 특징이 없었죠. 레이업(적층) 방식이 너무 단순했습니다. 섬유를 주로 0도와 90도로만 배치했고, 사선 방향의 섬유는 거의 없었죠. 그렇게 하면 구조는 단단해지지만 섬세한 맛은 사라집니다.
복합 소재를 다룬다는 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튜브 자체를 직접 만드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같은 카본 롤과 같은 몰드(틀)를 사용하더라도, 층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튜브가 만들어집니다. 다운 튜브, 탑 튜브, 스테이는 각각 해야 할 역할이 다릅니다.
밥은 이를 가장 먼저 파고든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또한 튜브의 직경을 키워 벽면은 얇게 만들면서도 강성을 확보했는데, 이는 알루미늄의 사이즈와 유사했지만 카본에 맞게 아주 사려 깊게 적용되었습니다. 그 조합이 큰 차이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튜브를 접합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하중이 접합부를 통해 어떻게 흐르는지에 대한 기술은 25년 동안 진화해 왔지만, 여전히 업계의 다른 방식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사람들은 "이 카본 자전거는 내 스틸 자전거를 생각나게 한다"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건 우리에게 큰 찬사였습니다. 안락함과 생동감을 주면서도 더 뛰어난 업힐 성능과 훨씬 가벼운 무게를 제공했으니까요.

'안락함'이 계속 언급되는데, 왜 팔리에게 그렇게 중요한가요?
지난 25년 동안 도로 상황이 전혀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안락함은 성능의 반대말이 아니라, 성능을 가능하게 하는 요소입니다. 강성, 핸들링, 무게를 손해 보지 않으면서 안락함을 줄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있나요? 라이더는 더 오래 생생함을 유지할 수 있고, 파워를 지속할 수 있습니다. 완벽한 트랙뿐만 아니라 실제 거친 도로에서도 자전거를 제어할 수 있게 되죠.
뉴잉글랜드라는 지역적 특성이 그 철학에 얼마나 영향을 주었나요?
매우 큽니다. 이곳의 도로는 그 자체로 교훈을 줍니다.
뉴잉글랜드는 일찍부터 사이클로크로스가 성행했습니다. 우리는 ‘그래블’이라는 단어가 생기기 20년 전부터 사이클로크로스 바이크를 도로와 오프로드에서 탔습니다. 날씨도 중요하죠. 림 브레이크로 젖은 노면을 달리는 게 별로라는 걸 알았기에, 우리는 주류가 되기 훨씬 전인 2012년쯤에 이미 첫 번째 디스크 브레이크 로드 바이크를 만들었습니다.
또한 뉴잉글랜드 특유의, 혹은 '양키' 스타일의 정신이 있습니다. 밥은 스스로를 "짠돌이 양키(tight Yankee)"라고 농담하곤 했습니다. 소재 사용의 효율성, 낭비하지 않는 것에 대한 사려 깊음이 있죠. 우리는 단순히 어떤 모양이든 만들 수 있다고 해서 무턱대고 성형하는 게 아니라, 전환점(transition) 하나하나에 신경을 씁니다.
밥 팔리는 회사의 역사에서 거대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그의 유산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밥은 항상 혼자 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을 겁니다. 그의 이름이 다운 튜브에 적혀 있는 건 회사를 시작할 용기가 있었기 때문이지만, 팔리는 언제나 팀이었습니다.
초기에 밥은 자신이 반복적인 프레임 생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는 팅커러(tinkerer, 끊임없이 만지작거리며 개선하는 사람)이자 문제 해결사였죠. 그는 일관되게 실행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업무를 위임했고, 공을 항상 동료들에게 돌렸습니다.
제가 그에게 배운 것은 '도그마(교조적 교리)에 의문을 제기하는 태도'입니다. 로드 사이클링은 변화에 굉장히 저항적입니다. STI 레버가 처음 나왔을 때나, 디스크 브레이크가 로드에 들어올 때, 혹은 클린처 타이어는 레이싱용이 아니라고 했을 때 사람들은 그것을 이단시했습니다.
밥은 항상 "왜 안 되겠어? 일단 해보자"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샵 구석에는 실패한 실험작들이 가득합니다. 탑 튜브가 없는 트라이애슬론 바이크, 세상에 나오지 못한 테스트용 자전거들... 하지만 자전거는 규모가 작기 때문에 시도해 볼 수 있습니다. 월요일에 아이디어를 내면 화요일 오후에 그걸 타고 나갈 수 있죠.
그 실험 정신과 호기심이 그의 거대한 유산입니다.
당신의 역할도 많이 변했습니다. 지금은 무엇에 집중하고 있나요?
처음 시작했을 때는 밥과 함께 제작과 디자인, 즉 프레임을 만들고 제조 공정을 발전시키는 일을 했습니다.
2006~2007년쯤 밥과 이사벨(Isabel)이 저에게 비즈니스 쪽을 맡아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제가 IT 영업 경험도 있고 샵에서 일한 경험도 있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약 10년 동안 제품 개발에 참여하면서도 딜러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해외 유통을 확장하는 데 시간을 보냈습니다.
2017년쯤 비즈니스가 안정되자 다시 제품 관리 쪽으로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프레임뿐만 아니라 완성차를 제공하기 시작했죠. 현재 제 역할은 실질적인 '제품 총괄(Head of Product)'입니다.
제품의 전체 라이프사이클을 관리하는 일이죠. 어떤 시장에 진입할지, 어떤 자전거를 만들지, 디자인과 컨셉, 공급업체 관리부터 작은 나사와 와셔 하나까지 챙깁니다. 어떤 날은 제품 스케치를 하고, 다음 날은 나사 공급업체와 협의를 합니다.
작은 회사라 여전히 딜러 관리나 마케팅, 전시회 업무도 합니다. 지금도 '룰러 라이브(Rouleur Live)'를 위해 런던에 와 있죠. 현장에서 라이더와 딜러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제품에 반영됩니다. 진공 상태에서는 디자인을 할 수 없으니까요.
새로운 챕터를 맞이한 팔리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요?
비전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환상적인 자전거를 만드는 것'이죠.
한 가지 큰 변화는 보급형 모델의 생산지를 아시아에서 포르투갈로 옮긴 것입니다. 관세 때문이 아니라 품질과 워크플로우 때문이었습니다. 작은 회사로서 아시아의 대형 공장들에게 우리는 작은 물고기에 불과합니다. 그들은 품질보다는 가격에 최적화되어 있죠.
포르투갈에서는 단일 품목 생산 방식(single-piece workflow)으로 일하며 매달 물량을 받습니다. 매사추세츠 본사의 운영 방식과 훨씬 비슷하죠. 덕분에 재고 관리가 수월해졌고 딜러들에게 더 안정적으로 제품을 공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새 경영진인 존(John)의 리더십이 컸습니다. 그는 영업, 마케팅, 운영, 물류, 기술 분야에서 깊은 경험을 가져왔죠. 밥과 이사벨이 그런 배경 없이 놀라운 브랜드를 일궈낸 것도 대단하지만, 이제는 운영의 엄격함이 갖춰지면서 우리가 사랑하는 '제품'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트렉이나 스페셜라이즈드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품질과 개인화에 집중하는 하이엔드 고성능 카본 바이크 시장에는 여전히 넓은 빈 공간이 있습니다. 우리의 할 일은 그저 계속해서 좋은 물건을 만드는 것입니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당신을 열정적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요?
자전거는 여전히 직접 시도해 볼 수 있을 만큼 작다는 점입니다. 소재를 직접 만질 수 있고, 그 결과를 바로 타볼 수 있죠. 최고의 제품은 열정에서 나옵니다. 만드는 것에 깊은 애정을 쏟으면 그 결과물에 고스란히 나타납니다. 그것이 제가 20년 넘게 이곳에 머문 이유이며, 여전히 이 일이 가치 있다고 느끼는 이유입니다.
PARLEE Z-ZERO GT
*상단의 링크를 누르면 해당 제품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Photography and writing by Chessin Gertler for Freedom Machine”

“밥(Bob)과 저는 안락함(comfort)을 진동, 피로도, 굴곡, 주파수 응답 같은 측정 가능한 요소들로 세분화해 보려고 앉아본 적이 있습니다. 아마 25가지 정도의 서로 다른 지표를 찾아냈던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완전하게 느껴졌죠. 우리는 그것 때문에 논쟁을 벌였고, 계속해서 새로운 지표를 추가했습니다. 결국 그 작업은 자체적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버렸어요. 안락함이 실재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것이 '경험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타보면 바로 알 수 있는 거죠. 그런 감각을 바탕으로 오랫동안 설계하다 보면, 데이터만큼이나 자신의 직감을 신뢰하기 시작하게 됩니다.”
톰 로디는 20년 넘게 팔리에서 다양한 역할을 맡아왔습니다. 그는 회사의 형성기 동안 밥 팔리와 함께 일했으며, 현재도 팔리의 프레임이 구상되고 평가되며 진화하는 과정에 깊이 관여하고 있습니다. 로디의 관점은 소재와 라이더, 그리고 수년에 걸친 경험을 통해 서서히 드러나는 피드백 루프에 오랫동안 노출되며 형성되었습니다. 다른 이들이 성능을 단편적인 수치로 이야기할 때, 로디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생각합니다. 이번 대화에서 그는 성능의 한 축이지만 측정하기엔 까다로운 '안락함'이라는 영역, 그리고 신체적 경험을 숫자로 환원하는 것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당신의 배경과 팔리에 합류하게 된 경로를 소개해 주시겠어요?
저는 2003년부터 팔리에서 일했습니다. 대학 시절 학비를 벌기 위해 계속 자전거 샵에서 일했죠. 좋은 자전거를 살 돈이 없어서 직접 고쳐 타곤 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내 프레임을 직접 만들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됐어요. 다행히 제 아이디어를 독립 연구 과제로 허락해 주신 예술 전공 교수님이 계셨습니다. 화가였지만 기계적인 것을 좋아하셨고, 올드 부가티를 소유하고 수십 년 전에 수제 스틸 자전거를 사셨던 분이라 ‘장인 정신’을 이해하셨죠.
졸업 후에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90년대 중반에는 자전거 산업이 모두 유럽이나 콜로라도, 캘리포니아에 있는 것 같았거든요. 결국 6~7년 정도 IT 업계에서 일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매사추세츠주 홉킨턴의 데이터 저장 장치 회사로 오게 됐습니다.
하지만 그때도 밤이나 주말이면 지하실 작업실에서 계속 자전거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용접과 납땜을 하고, 기계 가공과 용접 수업을 듣고, CAD를 배웠죠. 9.11 테러 이후 IT 거품이 꺼졌고, 2002~2003년쯤 아내와 저는 휴식을 갖기로 했습니다. 저는 직접 간판을 걸고 스틸 자전거를 만들기로 결심했죠.
힘든 시기였습니다. 당시 스틸 자전거는 사양길이었어요. 수제 자전거의 르네상스가 오기 전이었죠. 혼자서 자전거를 만들고, 팔고, 모든 것을 다 하려니 벅찼습니다. 그때 아내가 현명하게 말했죠. “이미 자전거를 만들고 있는 사람 밑에 가서 배워보는 게 어때?”
피바디(Peabody)에 사는 밥 팔리라는 사람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가 타일러 해밀턴(Tyler Hamilton)의 자전거를 만들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죠. 파트타임 구인 광고를 보고 찾아갔고, 그렇게 시작된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졌습니다.
팔리가 다르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이 있었나요?
완전히요. 밥이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설명해주고, 그 자전거를 처음 타본 순간은 마치 영화 인디아나 존스에서 성궤를 열거나 펄프 픽션에서 가방을 열었을 때 같았습니다. 저는 이미 초기 카본 자전거를 많이 타봤지만 솔직히 별 감흥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그 주행감은 마치 미래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낭만적으로 생각했던 스틸이 더 이상 정답이 아니라는 걸 즉각 깨달았죠.
기존에 알던 자전거들과 비교했을 때 무엇이 달랐나요?
당시에는 일종의 '트레이드 오프(보상 관계)'가 있었습니다. 알루미늄 자전거는 매끄러운 도로에선 단단하고 빨랐지만, 노면이 나빠지는 순간 끔찍했죠. 스틸이나 티타늄은 안락함과 생동감이 있었지만 무게와 강성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밥의 자전거는 그 모든 상충하는 요소들을 다 잡아냈습니다. 카본처럼 가벼우면서도, 필요할 땐 단단했고, 스틸처럼 안락하고 생동감이 있었죠.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그러면서도 당시의 어떤 자전거보다 훨씬 가벼웠습니다.
그게 저에게는 ‘삼박자(trifecta)’가 맞았던 순간이었습니다. 그게 정상이 아니라는 걸 알 정도로 저는 자전거를 충분히 타본 상태였으니까요.
초기 카본 자전거들이 주행감이 좋지 않았던 것에 비해, 밥은 어떻게 그것을 성취했나요?
초기 카본 중 상당수는 밥이 "검은 알루미늄"이라고 부르던 것들이었습니다. 가볍긴 했지만 특징이 없었죠. 레이업(적층) 방식이 너무 단순했습니다. 섬유를 주로 0도와 90도로만 배치했고, 사선 방향의 섬유는 거의 없었죠. 그렇게 하면 구조는 단단해지지만 섬세한 맛은 사라집니다.
복합 소재를 다룬다는 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튜브 자체를 직접 만드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같은 카본 롤과 같은 몰드(틀)를 사용하더라도, 층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튜브가 만들어집니다. 다운 튜브, 탑 튜브, 스테이는 각각 해야 할 역할이 다릅니다.
밥은 이를 가장 먼저 파고든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또한 튜브의 직경을 키워 벽면은 얇게 만들면서도 강성을 확보했는데, 이는 알루미늄의 사이즈와 유사했지만 카본에 맞게 아주 사려 깊게 적용되었습니다. 그 조합이 큰 차이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튜브를 접합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하중이 접합부를 통해 어떻게 흐르는지에 대한 기술은 25년 동안 진화해 왔지만, 여전히 업계의 다른 방식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사람들은 "이 카본 자전거는 내 스틸 자전거를 생각나게 한다"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건 우리에게 큰 찬사였습니다. 안락함과 생동감을 주면서도 더 뛰어난 업힐 성능과 훨씬 가벼운 무게를 제공했으니까요.
'안락함'이 계속 언급되는데, 왜 팔리에게 그렇게 중요한가요?
지난 25년 동안 도로 상황이 전혀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안락함은 성능의 반대말이 아니라, 성능을 가능하게 하는 요소입니다. 강성, 핸들링, 무게를 손해 보지 않으면서 안락함을 줄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있나요? 라이더는 더 오래 생생함을 유지할 수 있고, 파워를 지속할 수 있습니다. 완벽한 트랙뿐만 아니라 실제 거친 도로에서도 자전거를 제어할 수 있게 되죠.
뉴잉글랜드라는 지역적 특성이 그 철학에 얼마나 영향을 주었나요?
매우 큽니다. 이곳의 도로는 그 자체로 교훈을 줍니다.
뉴잉글랜드는 일찍부터 사이클로크로스가 성행했습니다. 우리는 ‘그래블’이라는 단어가 생기기 20년 전부터 사이클로크로스 바이크를 도로와 오프로드에서 탔습니다. 날씨도 중요하죠. 림 브레이크로 젖은 노면을 달리는 게 별로라는 걸 알았기에, 우리는 주류가 되기 훨씬 전인 2012년쯤에 이미 첫 번째 디스크 브레이크 로드 바이크를 만들었습니다.
또한 뉴잉글랜드 특유의, 혹은 '양키' 스타일의 정신이 있습니다. 밥은 스스로를 "짠돌이 양키(tight Yankee)"라고 농담하곤 했습니다. 소재 사용의 효율성, 낭비하지 않는 것에 대한 사려 깊음이 있죠. 우리는 단순히 어떤 모양이든 만들 수 있다고 해서 무턱대고 성형하는 게 아니라, 전환점(transition) 하나하나에 신경을 씁니다.
밥 팔리는 회사의 역사에서 거대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그의 유산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밥은 항상 혼자 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을 겁니다. 그의 이름이 다운 튜브에 적혀 있는 건 회사를 시작할 용기가 있었기 때문이지만, 팔리는 언제나 팀이었습니다.
초기에 밥은 자신이 반복적인 프레임 생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는 팅커러(tinkerer, 끊임없이 만지작거리며 개선하는 사람)이자 문제 해결사였죠. 그는 일관되게 실행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업무를 위임했고, 공을 항상 동료들에게 돌렸습니다.
제가 그에게 배운 것은 '도그마(교조적 교리)에 의문을 제기하는 태도'입니다. 로드 사이클링은 변화에 굉장히 저항적입니다. STI 레버가 처음 나왔을 때나, 디스크 브레이크가 로드에 들어올 때, 혹은 클린처 타이어는 레이싱용이 아니라고 했을 때 사람들은 그것을 이단시했습니다.
밥은 항상 "왜 안 되겠어? 일단 해보자"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샵 구석에는 실패한 실험작들이 가득합니다. 탑 튜브가 없는 트라이애슬론 바이크, 세상에 나오지 못한 테스트용 자전거들... 하지만 자전거는 규모가 작기 때문에 시도해 볼 수 있습니다. 월요일에 아이디어를 내면 화요일 오후에 그걸 타고 나갈 수 있죠.
그 실험 정신과 호기심이 그의 거대한 유산입니다.
당신의 역할도 많이 변했습니다. 지금은 무엇에 집중하고 있나요?
처음 시작했을 때는 밥과 함께 제작과 디자인, 즉 프레임을 만들고 제조 공정을 발전시키는 일을 했습니다.
2006~2007년쯤 밥과 이사벨(Isabel)이 저에게 비즈니스 쪽을 맡아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제가 IT 영업 경험도 있고 샵에서 일한 경험도 있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약 10년 동안 제품 개발에 참여하면서도 딜러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해외 유통을 확장하는 데 시간을 보냈습니다.
2017년쯤 비즈니스가 안정되자 다시 제품 관리 쪽으로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프레임뿐만 아니라 완성차를 제공하기 시작했죠. 현재 제 역할은 실질적인 '제품 총괄(Head of Product)'입니다.
제품의 전체 라이프사이클을 관리하는 일이죠. 어떤 시장에 진입할지, 어떤 자전거를 만들지, 디자인과 컨셉, 공급업체 관리부터 작은 나사와 와셔 하나까지 챙깁니다. 어떤 날은 제품 스케치를 하고, 다음 날은 나사 공급업체와 협의를 합니다.
작은 회사라 여전히 딜러 관리나 마케팅, 전시회 업무도 합니다. 지금도 '룰러 라이브(Rouleur Live)'를 위해 런던에 와 있죠. 현장에서 라이더와 딜러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제품에 반영됩니다. 진공 상태에서는 디자인을 할 수 없으니까요.
새로운 챕터를 맞이한 팔리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요?
비전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환상적인 자전거를 만드는 것'이죠.
한 가지 큰 변화는 보급형 모델의 생산지를 아시아에서 포르투갈로 옮긴 것입니다. 관세 때문이 아니라 품질과 워크플로우 때문이었습니다. 작은 회사로서 아시아의 대형 공장들에게 우리는 작은 물고기에 불과합니다. 그들은 품질보다는 가격에 최적화되어 있죠.
포르투갈에서는 단일 품목 생산 방식(single-piece workflow)으로 일하며 매달 물량을 받습니다. 매사추세츠 본사의 운영 방식과 훨씬 비슷하죠. 덕분에 재고 관리가 수월해졌고 딜러들에게 더 안정적으로 제품을 공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새 경영진인 존(John)의 리더십이 컸습니다. 그는 영업, 마케팅, 운영, 물류, 기술 분야에서 깊은 경험을 가져왔죠. 밥과 이사벨이 그런 배경 없이 놀라운 브랜드를 일궈낸 것도 대단하지만, 이제는 운영의 엄격함이 갖춰지면서 우리가 사랑하는 '제품'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트렉이나 스페셜라이즈드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품질과 개인화에 집중하는 하이엔드 고성능 카본 바이크 시장에는 여전히 넓은 빈 공간이 있습니다. 우리의 할 일은 그저 계속해서 좋은 물건을 만드는 것입니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당신을 열정적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요?
자전거는 여전히 직접 시도해 볼 수 있을 만큼 작다는 점입니다. 소재를 직접 만질 수 있고, 그 결과를 바로 타볼 수 있죠. 최고의 제품은 열정에서 나옵니다. 만드는 것에 깊은 애정을 쏟으면 그 결과물에 고스란히 나타납니다. 그것이 제가 20년 넘게 이곳에 머문 이유이며, 여전히 이 일이 가치 있다고 느끼는 이유입니다.
*상단의 링크를 누르면 해당 제품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Photography and writing by Chessin Gertler for Freedom Mach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