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 애호가로, 그리고 이제는 시계 전문지 편집장으로 지내면서 누군가와 대화를 하다 보면 정말 많이 듣는 질문이 있습니다. ‘시계를 언제부터 좋아하셨어요?’ 그리고 ‘시계를 왜 좋아하세요?’
A. Lange & Söhne. The “Homage to F. A. Lange” Anniversary Edition
시계에 처음 관심을 가진 계기는 기억납니다. 고등학생 시절 학원에서 제일 앞에 앉아 강의하는 선생님의 손목을 보고 있었죠. 선생님이 착용한 굉장히 번쩍이는 시계는 신기하게 초침이 끊어짐 없이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1초에 한 칸씩 움직이는 일반적인 쿼츠 시계만 보다가 기계식 시계를 처음 접한 순간입니다.
한참 후에 생각해 보니 그때 본 시계가 대체 뭐였는지 너무 궁금합니다. 분명 다이얼 6시 방향 일부가 뚫려 있었거든요. 20년도 전의 이야기니 아직 오픈워크 다이얼 시계가 나오기도 전입니다. 과연 그 시계가 투르비용이었을지, 아니면 대륙에서 만들어진 건지 이제는 알 길이 없습니다만, 어쨌든 이 신기하면서도 신선한 초침의 움직임에 빠져서 인터넷으로 시계에 대해 검색을 시작했습니다.
스마트폰은 고사하고 개인 PC도 없을 때라 당시 한창 유행한 PC방에서 말입니다. 검색 키워드조차 몰라서 ‘아 내가 본 움직임이 기계식 시계라는 거구나’라는 걸 깨닫는데도 꽤 시간이 걸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때부터 기계식 시계의 원리에까지 빠진 건 아닙니다만, 검색으로 본 복잡하고 아름다운 무브먼트가 정말 큰 인상으로 남았습니다.
자사의 역사적인 무브먼트를 복원한 Omega Speedmaster CAL. 321.
대학교에 입학하고서 본격적으로 시계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적극적으로 찾아보고 파고들었죠. 마침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한국에서 당시에는 거의 볼 수 없는 엔트리급 기계식 시계를 판매하는 곳이 있었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구경을 갔고, 구입도 하고, 나중엔 아르바이트까지 했었죠.
이때부터 흔히 말하는 동호회 활동도 활발히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개인적으로, 업무적으로도 계속 만나는 좋은 인연을 많이 얻었죠. 아마 시계 동호회 활동이 없었다면 진로를 시계로 잡을 생각은 못했을 겁니다.
자전거와의 인연도 이때부터입니다. 고등학교 시절 생활 자전거로 한강을 누비면서 고기능성 자전거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습니다. 특히 매끈한 카본 프레임은 제가 극도로 싫어하는 용접 자국 없이 제작이 가능하기에 언젠가 반드시 구입을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클래식 로드의 존재도 알게 됐죠. 탑튜브가 수평을 이루는 완벽한 삼각형, 크로몰리이기에 가능한 얇은 프레임, 아름다운 러그에 빈티지 구동계, 여기에 가죽으로 제작한 액세서리까지. 각 브랜드가 자랑하는 최신 카본 머신과는 다른 색다른 매력에 푹 빠졌습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시계 시장과 자전거는 정말 비슷한 느낌이에요. 시계 역시 한세기를 풍미한 클래식 드레스 워치가 잠시 쉬어가면서, 신소재와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의 스포츠 워치가 현재 큰 인기를 끌고 있으니까요.
몰튼 뉴시리즈 더블 파일런. 루비워크샵
어쨌든 아직 이루진 못했지만 제 목표는 경량화와 더 이상의 업그레이드가 필요 없는 최신 머신과 빈티지한 클래식 로드를 각각 한대씩 마련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계 동호회 활동 중에 알아서 안될 두 종류를 자전거를 또 목격해버렸죠. 바로 몰튼과 브롬톤입니다. 아내와 연애 시절부터 같이 라이딩을 함께한 브롬톤에 대해서는 다음에 자세히 언급할 기회가 있을 것 같고요, 제가 아직 이루지 못한 큰 꿈은 몰튼입니다.
예전 다음 카페의 시계 동호회에는 한국에서 정말 유명한 몰트너가 있었습니다. 당시 몰튼 카페에서도 그분의 더블 파일럿만큼 멋진 튜닝은 드물었다는 평가가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참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하필 처음 본 몰튼이 애호가의 시선에서 튜닝이 끝난 더블 파일럿이었던거죠.
제가 흐르는 초침으로 시계에 관심이 생겨 여러 시계를 보고, 원리에 대해 공부하면서 깨달은 제 취향은 아름답게 가공한 금속의 질감에 대한 열망입니다. 개인적으로 시계를 가장 좋아하긴 하지만 그 외에도 금속 가공의 정수를 보여주는 물건들은 전반적으로 다 좋아합니다.
심지어 수준 높은 가공을 거치는 금속 제품들은 기능적으로도 굉장히 뛰어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대표적으로 자전거, 네이키드 바이크, 총 같은 것들이죠. 지금도 유튜브에서 최신 설비가 퍼포먼스로 보여주는 금곡 가공 동영상을 멍하니 쳐다볼 때가 많습니다. 미적인 관점에서 그 정점에 위치한 게 바로 시계죠.
이런 저의 시선에서 자전거 중에 가장 큰 매력을 느끼는 기종이 몰튼 뉴시리즈 더블 파일런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자전거냐고 물어본다면 조금 고민이 되지만, 신선한 구조까지 더해져 독보적인 존재임에는 틀림이 없죠. 어떤 자전거에서도 볼 수 없는 기하학적인 스페이스 프레임 구조와 서스펜션, 도색 없이 은빛으로 빛나는 스테인리스스틸 소재까지. 작품이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몰튼과 기계식 시계는 미적인 관점에서도, 그리고 여전히 아날로그적인 제조 방식이나 존재 이유까지 서로를 관통하는 가치가 같습니다. 그래서 제 라이프스타일에 조금의 여유가 생기는 순간 저 역시 몰트너가 될 것이라 생각하고 있고, 제가 그렇듯이 시계 애호가라면 언젠가 한번쯤 몰튼에 관심을 가질 거라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친한 지인이 루비워크샵의 권오현 대표님과 한정판 지샥 거래를 해서 저에게까지 인연이 닿은 걸 보면 세상은 정말 넓고도 좁았습니다.
가장 복잡한 크로노그래프 중 하나인 A. Lange & Söhne Triple Split. Movement Parts 567.
다시 시계로 돌아와서 가격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게요. 흔히들 보석 하나 없는 시계가 어떻게 그리 비쌀 수가 있냐고 합니다. 시계에 관심이 없는 분들은 브랜드 이름값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 의문엔 자세한 설명도 필요 없습니다. 답은 아주 간단해요. 시계가 비싼 이유는 그냥 작기 때문입니다.
너무 심플한가요? 기계식 시계를 기준으로 아무리 단순한 기능의 제품이라도 내부엔 작은 나사까지 몇 십 개의 부품이 필요합니다. 복잡한 기능으로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가 되면 5~600개도 우습죠. 이런 손목시계의 크기는 정말 커 봐야 50mm 미만입니다.
보통 40mm 정도죠. 동전보다 조금 큰 사이즈에 몇 백 개의 부품을 우겨넣는 작업 자체가 보통 일이 아닙니다. 조금 더 쉬운 예를 들어볼게요. 만약에 자동차를 똑같은 구조인데 크기를 30cm 정도로 만들라고 하면 어떨까요? 안에 엔진부터 복잡한 변속기까지 똑같이 말이에요. 답이 안 나올 겁니다.
무브먼트 플레이트나 파트의 모서리를 다듬는 베벨링 작업.
단순히 작게 만드는 것도 어려운데 시장에서 명품이라 불리는 시계들은 여기에 미적인 가공을 더합니다. 여기서 또 한 번 가격이 극단적으로 올라가죠. 이제부터 소개하는 내용이 단순한 시계가 명품으로 탈바꿈하는 가장 큰 이유이자 제품별로 격차가 생기는 이유입니다. 말보단 사진으로 보시면 이해가 쉽습니다.
시계 내부 부속의 절삭 직후 모습과 마감과 세공을 더한 모습.
위 사진을 보면 크게 세 단계로 절삭 직후, 표면 가공, 마무리 세공 단계를 거친 시계 부속을 볼 수 있습니다. 단순 절삭 후의 거친 표면은 온데간데없고 아름다운 패턴과 화려한 광채를 볼 수 있죠. 여기서 다시 언급하지만 저 부품조차 몇 mm 정도의 크기입니다.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작은 부속 수백 개를 완벽한 상태로 만드는 것. 이게 바로 명품 기계식 시계의 매력이자 흔히 말하는 하이엔드의 세계입니다.
금속 세공의 끝이죠. 아직까지 이런 작은 부속의 마감은 기계로는 불가능합니다. 특히 복잡한 형태의 모서리나 구석의 곡면 가공은 100% 수작업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공학자분들은 ‘에이 설마 저게 안될까’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다만 최고급 시계에서 잡고 있는 마감 기준은 생각보다 아주 높아요.
현미경 수준의 돋보기로 보았을 때 거친 결이 전혀 없이 거울처럼 빛나는 수준이니까요. 저 역시 공학을 공부했고 한때 전공이 정밀기계가공이었습니다. 웬만큼 복잡한 형태를 자동으로 깎는 건 비교적 간단하지만 이를 섬세하게 마무리하는 건 다른 이야기입니다. 최후의 아날로그죠.
가장 완벽한 마감의 시계. Philippe Dufour, "Simplicity" SteveG's Watch(watchpics.com)
일반적인 패션 시계가 기본적인 디자인만을 갖췄다면 엔트리 기계식 시계는 여기에 일체의 전자장비 없이 태엽으로만 구동하는 무브먼트라는 기술적인 영역이 더해집니다. 그리고 제일 먼저 눈에 띄는 외장 파트와 큰 부속들을 시작으로 최고 수준에 다다르면 시계를 분해하기 전에는 볼 수도 없는 가장 구석진 곳의 작은 파트까지 모두 아름다운 조각을 하는 예술의 영역이 추가되죠.
여기에 수많은 기능을 구현하기 위한 기하학적인 설계에까지 빠지면 시계의 세상에서 벗어나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예전 NHK에서 제작한 가장 유명하고 유일한 시계 제작 다큐멘터리 <시간의 명장>에서 이런 표현을 했습니다. 시계는 손목 위의 소우주다. 결코 과언이 아닙니다. 아름다운 세공, 소우주라 불릴만한 복잡한 구조, 다양한 디자인, 역사적인 아이콘까지 끝이 없는 시계의 세계에 들어오신 걸 환영합니다.
김도우 편집장
다음과 네이버 시계 카페, 그 외 다양한 온라인 시계 커뮤니티의 1세대 멤버로 오랜 시간 시계 애호가로 활동, 이후 스위스 럭셔리 시계 브랜드의 수입사에서 근무하다가 2016년 시계 잡지인 크로노스에 합류했습니다. 전문적인 리뷰와 칼럼을 작성하는 지금도 여전히 시계를 ‘즐기고’ 있는 애호가입니다.
시계 애호가로, 그리고 이제는 시계 전문지 편집장으로 지내면서 누군가와 대화를 하다 보면 정말 많이 듣는 질문이 있습니다. ‘시계를 언제부터 좋아하셨어요?’ 그리고 ‘시계를 왜 좋아하세요?’
A. Lange & Söhne. The “Homage to F. A. Lange” Anniversary Edition
시계에 처음 관심을 가진 계기는 기억납니다. 고등학생 시절 학원에서 제일 앞에 앉아 강의하는 선생님의 손목을 보고 있었죠. 선생님이 착용한 굉장히 번쩍이는 시계는 신기하게 초침이 끊어짐 없이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1초에 한 칸씩 움직이는 일반적인 쿼츠 시계만 보다가 기계식 시계를 처음 접한 순간입니다.
한참 후에 생각해 보니 그때 본 시계가 대체 뭐였는지 너무 궁금합니다. 분명 다이얼 6시 방향 일부가 뚫려 있었거든요. 20년도 전의 이야기니 아직 오픈워크 다이얼 시계가 나오기도 전입니다. 과연 그 시계가 투르비용이었을지, 아니면 대륙에서 만들어진 건지 이제는 알 길이 없습니다만, 어쨌든 이 신기하면서도 신선한 초침의 움직임에 빠져서 인터넷으로 시계에 대해 검색을 시작했습니다.
스마트폰은 고사하고 개인 PC도 없을 때라 당시 한창 유행한 PC방에서 말입니다. 검색 키워드조차 몰라서 ‘아 내가 본 움직임이 기계식 시계라는 거구나’라는 걸 깨닫는데도 꽤 시간이 걸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때부터 기계식 시계의 원리에까지 빠진 건 아닙니다만, 검색으로 본 복잡하고 아름다운 무브먼트가 정말 큰 인상으로 남았습니다.
자사의 역사적인 무브먼트를 복원한 Omega Speedmaster CAL. 321.
대학교에 입학하고서 본격적으로 시계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적극적으로 찾아보고 파고들었죠. 마침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한국에서 당시에는 거의 볼 수 없는 엔트리급 기계식 시계를 판매하는 곳이 있었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구경을 갔고, 구입도 하고, 나중엔 아르바이트까지 했었죠.
이때부터 흔히 말하는 동호회 활동도 활발히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개인적으로, 업무적으로도 계속 만나는 좋은 인연을 많이 얻었죠. 아마 시계 동호회 활동이 없었다면 진로를 시계로 잡을 생각은 못했을 겁니다.
자전거와의 인연도 이때부터입니다. 고등학교 시절 생활 자전거로 한강을 누비면서 고기능성 자전거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습니다. 특히 매끈한 카본 프레임은 제가 극도로 싫어하는 용접 자국 없이 제작이 가능하기에 언젠가 반드시 구입을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클래식 로드의 존재도 알게 됐죠. 탑튜브가 수평을 이루는 완벽한 삼각형, 크로몰리이기에 가능한 얇은 프레임, 아름다운 러그에 빈티지 구동계, 여기에 가죽으로 제작한 액세서리까지. 각 브랜드가 자랑하는 최신 카본 머신과는 다른 색다른 매력에 푹 빠졌습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시계 시장과 자전거는 정말 비슷한 느낌이에요. 시계 역시 한세기를 풍미한 클래식 드레스 워치가 잠시 쉬어가면서, 신소재와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의 스포츠 워치가 현재 큰 인기를 끌고 있으니까요.
몰튼 뉴시리즈 더블 파일런. 루비워크샵
어쨌든 아직 이루진 못했지만 제 목표는 경량화와 더 이상의 업그레이드가 필요 없는 최신 머신과 빈티지한 클래식 로드를 각각 한대씩 마련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계 동호회 활동 중에 알아서 안될 두 종류를 자전거를 또 목격해버렸죠. 바로 몰튼과 브롬톤입니다. 아내와 연애 시절부터 같이 라이딩을 함께한 브롬톤에 대해서는 다음에 자세히 언급할 기회가 있을 것 같고요, 제가 아직 이루지 못한 큰 꿈은 몰튼입니다.
예전 다음 카페의 시계 동호회에는 한국에서 정말 유명한 몰트너가 있었습니다. 당시 몰튼 카페에서도 그분의 더블 파일럿만큼 멋진 튜닝은 드물었다는 평가가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참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하필 처음 본 몰튼이 애호가의 시선에서 튜닝이 끝난 더블 파일럿이었던거죠.
제가 흐르는 초침으로 시계에 관심이 생겨 여러 시계를 보고, 원리에 대해 공부하면서 깨달은 제 취향은 아름답게 가공한 금속의 질감에 대한 열망입니다. 개인적으로 시계를 가장 좋아하긴 하지만 그 외에도 금속 가공의 정수를 보여주는 물건들은 전반적으로 다 좋아합니다.
심지어 수준 높은 가공을 거치는 금속 제품들은 기능적으로도 굉장히 뛰어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대표적으로 자전거, 네이키드 바이크, 총 같은 것들이죠. 지금도 유튜브에서 최신 설비가 퍼포먼스로 보여주는 금곡 가공 동영상을 멍하니 쳐다볼 때가 많습니다. 미적인 관점에서 그 정점에 위치한 게 바로 시계죠.
이런 저의 시선에서 자전거 중에 가장 큰 매력을 느끼는 기종이 몰튼 뉴시리즈 더블 파일런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자전거냐고 물어본다면 조금 고민이 되지만, 신선한 구조까지 더해져 독보적인 존재임에는 틀림이 없죠. 어떤 자전거에서도 볼 수 없는 기하학적인 스페이스 프레임 구조와 서스펜션, 도색 없이 은빛으로 빛나는 스테인리스스틸 소재까지. 작품이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몰튼과 기계식 시계는 미적인 관점에서도, 그리고 여전히 아날로그적인 제조 방식이나 존재 이유까지 서로를 관통하는 가치가 같습니다. 그래서 제 라이프스타일에 조금의 여유가 생기는 순간 저 역시 몰트너가 될 것이라 생각하고 있고, 제가 그렇듯이 시계 애호가라면 언젠가 한번쯤 몰튼에 관심을 가질 거라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친한 지인이 루비워크샵의 권오현 대표님과 한정판 지샥 거래를 해서 저에게까지 인연이 닿은 걸 보면 세상은 정말 넓고도 좁았습니다.
가장 복잡한 크로노그래프 중 하나인 A. Lange & Söhne Triple Split. Movement Parts 567.
다시 시계로 돌아와서 가격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게요. 흔히들 보석 하나 없는 시계가 어떻게 그리 비쌀 수가 있냐고 합니다. 시계에 관심이 없는 분들은 브랜드 이름값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 의문엔 자세한 설명도 필요 없습니다. 답은 아주 간단해요. 시계가 비싼 이유는 그냥 작기 때문입니다.
너무 심플한가요? 기계식 시계를 기준으로 아무리 단순한 기능의 제품이라도 내부엔 작은 나사까지 몇 십 개의 부품이 필요합니다. 복잡한 기능으로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가 되면 5~600개도 우습죠. 이런 손목시계의 크기는 정말 커 봐야 50mm 미만입니다.
보통 40mm 정도죠. 동전보다 조금 큰 사이즈에 몇 백 개의 부품을 우겨넣는 작업 자체가 보통 일이 아닙니다. 조금 더 쉬운 예를 들어볼게요. 만약에 자동차를 똑같은 구조인데 크기를 30cm 정도로 만들라고 하면 어떨까요? 안에 엔진부터 복잡한 변속기까지 똑같이 말이에요. 답이 안 나올 겁니다.
무브먼트 플레이트나 파트의 모서리를 다듬는 베벨링 작업.
단순히 작게 만드는 것도 어려운데 시장에서 명품이라 불리는 시계들은 여기에 미적인 가공을 더합니다. 여기서 또 한 번 가격이 극단적으로 올라가죠. 이제부터 소개하는 내용이 단순한 시계가 명품으로 탈바꿈하는 가장 큰 이유이자 제품별로 격차가 생기는 이유입니다. 말보단 사진으로 보시면 이해가 쉽습니다.
시계 내부 부속의 절삭 직후 모습과 마감과 세공을 더한 모습.
위 사진을 보면 크게 세 단계로 절삭 직후, 표면 가공, 마무리 세공 단계를 거친 시계 부속을 볼 수 있습니다. 단순 절삭 후의 거친 표면은 온데간데없고 아름다운 패턴과 화려한 광채를 볼 수 있죠. 여기서 다시 언급하지만 저 부품조차 몇 mm 정도의 크기입니다.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작은 부속 수백 개를 완벽한 상태로 만드는 것. 이게 바로 명품 기계식 시계의 매력이자 흔히 말하는 하이엔드의 세계입니다.
금속 세공의 끝이죠. 아직까지 이런 작은 부속의 마감은 기계로는 불가능합니다. 특히 복잡한 형태의 모서리나 구석의 곡면 가공은 100% 수작업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공학자분들은 ‘에이 설마 저게 안될까’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다만 최고급 시계에서 잡고 있는 마감 기준은 생각보다 아주 높아요.
현미경 수준의 돋보기로 보았을 때 거친 결이 전혀 없이 거울처럼 빛나는 수준이니까요. 저 역시 공학을 공부했고 한때 전공이 정밀기계가공이었습니다. 웬만큼 복잡한 형태를 자동으로 깎는 건 비교적 간단하지만 이를 섬세하게 마무리하는 건 다른 이야기입니다. 최후의 아날로그죠.
가장 완벽한 마감의 시계. Philippe Dufour, "Simplicity" SteveG's Watch(watchpics.com)
일반적인 패션 시계가 기본적인 디자인만을 갖췄다면 엔트리 기계식 시계는 여기에 일체의 전자장비 없이 태엽으로만 구동하는 무브먼트라는 기술적인 영역이 더해집니다. 그리고 제일 먼저 눈에 띄는 외장 파트와 큰 부속들을 시작으로 최고 수준에 다다르면 시계를 분해하기 전에는 볼 수도 없는 가장 구석진 곳의 작은 파트까지 모두 아름다운 조각을 하는 예술의 영역이 추가되죠.
여기에 수많은 기능을 구현하기 위한 기하학적인 설계에까지 빠지면 시계의 세상에서 벗어나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예전 NHK에서 제작한 가장 유명하고 유일한 시계 제작 다큐멘터리 <시간의 명장>에서 이런 표현을 했습니다. 시계는 손목 위의 소우주다. 결코 과언이 아닙니다. 아름다운 세공, 소우주라 불릴만한 복잡한 구조, 다양한 디자인, 역사적인 아이콘까지 끝이 없는 시계의 세계에 들어오신 걸 환영합니다.
김도우 편집장
다음과 네이버 시계 카페, 그 외 다양한 온라인 시계 커뮤니티의 1세대 멤버로 오랜 시간 시계 애호가로 활동, 이후 스위스 럭셔리 시계 브랜드의 수입사에서 근무하다가 2016년 시계 잡지인 크로노스에 합류했습니다. 전문적인 리뷰와 칼럼을 작성하는 지금도 여전히 시계를 ‘즐기고’ 있는 애호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