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AL자전거, 인류의 위기에서 탄생한 기계문명의 찬가

RU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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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의 시대, 새로운 기회

2020년 전세계로 확산되면서 인류의 역사를 영원히 바꾸게 된 코로나19. 이로 인해 관광업과 각종 소비시장이 직격탄을 맞았지만, 반대로 때아닌 호황을 누린 산업 또한 있었으니 자전거가 그 중 가장 큰 수혜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18, 2019년까지만 하더라도 늘어나는 전동 퍼스널 모빌리티와 공유 자전거의 성장 등으로 하향세를 막지 못할 것만 같았던 자전거 시장은 팬데믹 이후 유례없는 붐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수요를 감당하지 못한 공급 위기까지 일어나는 등, 그 어느 때보다 전 세계적으로 자전거에 대한 관심이 뜨겁습니다.


펜데믹 상황에서 모두가 자전거를 원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감염으로부터 안전한 개인 이동 수단, 실내 운동이 힘들어진 상황을 대체할 취미, 락다운으로 인한 갑갑함을 해소하기 위한 분출구 등 다양한 해석이 있는 가운데 무엇보다 자전거라는 이동 수단이 더 나은 삶을 위해 끊임없이 이동하던 인류의 본능을 투영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인류의 위기 상황에서 탄생했던 태생이 다시 한번 위기에 놓인 인류에게 부름을 받는 재미있는 역사를 보여줍니다.


보행, 혹은 동물의 힘에 의지했던 인류의 이동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된 최초의 모빌리티 기계 자전거. 그 시작은 의외로 화산 폭발로 인한 기후변화와 식량 부족 사태가 계기였습니다. 1815년 인도네시아의 탐보라 화산이 인류 유사 이래 최대 규모의 분출을 일으키면서, 1816년과 1817년은 소빙하기를 뛰어넘는 역대급 이상기후가 발생합니다.


탐보라 화산의 분출로 인해 전세계적으로 '여름 없는 해'가 발생합니다. 전 세계에서 흉작이 이어지며 식량 위기가 닥쳤고, 결국 곳곳에서 아사자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수 많은 유럽인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게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특히 피해가 심했던 독일에선 나폴레옹 전쟁의 후유증과 겹치면서 수많은 아사자와 더불어 가축들도 떼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출처 : picture alliance / -/dpa


자전거의 기원과 진화

당시 독일 바덴의 산림 관리를 맡았던 칼 폰 드라이스 남작은 드넓은 숲을 돌아다니기 위해서는 말이 필수적이었는데, 이와 같은 자연재해로 말을 비롯한 대부분의 가축이 사라지자 이를 대체하기 위한 기계 장치, 라우프마쉰Laufmaschine(달리는 기계)을 발명하기에 이릅니다.


라우프마쉰은 드라이스 남작의 이름을 따 '드라이지네'라고 불리기도합니다. 특허를 얻은 프랑스에선 '벨로시페드'라고 불리는 이 기계는 두 다리로 바닥을 차며 시속 15km의 속도를 낼 수 있었으며 제대로 된 조향을 할 수 있는 두 바퀴의 자전거로 인정받고 있습니다.(각주: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드로잉북인 코덱스 아틀란티쿠스의 자전거 스케치는 위작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오늘날 유아들이 타는 밸런스 바이크와 동일한 구조로 계승되는 드라이지네는 인류 최초의 기계적인 모빌리티가 되었으며, 걷거나 동물의 힘을 빌려야만 했던 인류가 교통 수단의 새로운 도약을 내딛은 기계 문명의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이후 자전거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전 유럽을 비롯해 미국, 인도 등지로 전파되었으며, 처음에는 하나의 레저 수단으로 관심을 모았지만 점차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며 두 바퀴에서 3, 4개의 바퀴로 늘어나기도 했으며, 체인, 샤프트 등의 다양한 구동장치, 각종 조향 방식이나 자전거 버스 등도 개발됩니다.


이후 1885년 전직 자전거 수리공 카를 벤츠는 3륜 자전거 플랫폼에 내연 기관을 장착하면서 최초의 내연기관 자동차인 '모터바겐'을 발명했으며(각주: 실제 역사상 첫 자동차는 1769년 프랑스의 공병장교 니콜라 조셉 퀴뇨가 포차 견인용으로 발명한 증기 자동차), 같은 해 고틀립 다임러는 보조바퀴를 장착한 자전거에 내연 기관을 달아 최초의 모터사이클로 알려진 '라이트바겐'을 발명합니다.


이외에도 타이어나 브레이크, 각종 구동 장치 등 자전거와 자동차의 기술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혁신을 주고받았으며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자전거 샵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윌버, 오빌 라이트 형제는 여전히 자전거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가벼운 무게와 뛰어난 강성이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최초의 비행기를 개발하기에 이릅니다.


세계적인 재난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혁신으로 어려움을 극복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한 단계 도약하는 인류의 발전을 대표할 수 있는 도구, 자전거는 위기 상황을 통해 새로운 기계 문명을 쌓아올리는 역할을 해냈을 뿐 아니라, 공학적인 측면에서도 인류가 발명한 그 어떠한 기계나 교통 수단보다 뛰어난 효율성과 접근성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마지막 이동장치

자전거는 별다른 외부 연료 없이 인력으로만 작동하며, 걷거나 뛰는 것보다 월등히 빠른 속도로 상상하기 힘든 장거리 이동이 가능합니다. 또한 아무리 많은 훈련을 한 마라톤 선수라고 하더라도 40km를 뛰는 것은 부담스럽겠지만, 자전거를 취미로 즐기는 이에겐 40km는 가벼운 라이딩에 속하는 수준이며 어느 정도의 훈련을 통해 매일같이 40km를 타더라도 몸에 큰 부하가 남지 않는다는 점은 페달링이 지닌 극도의 효율성을 입증합니다. 여기에 유아를 포함해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으며, 여타 교통수단에 비해 저렴한 가격, 쉬운 정비 등은 개개인의 이동 능력을 극대화하는 수단으로 세계 각지에서 대중의 발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기계적 이동 수단의 시작을 알린 자전거는 아이러니하게도 인류의 마지막 이동 장치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핵전쟁을 대비한 벙커나 쉘터에는 전자기 펄스로 인해 대부분의 전자 장치와 자동차 등이 고장 날 것을 대비해 최후의 이동 수단으로 자전거가 비치되어 있으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확실하고도 효과적인 교통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는 만큼 전쟁이 아닌 여타 아포칼립스 상황에서도 해당 상황을 벗어나는 데에는 자전거가 가장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전거로 세계 일주를 시도하는 사람들은 19세기부터 끊임없이 있었으며, 현재는 북극과 남극, 양 극점과 각종 사막 횡단,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등 극단적인 환경 모두 자전거로 다녀온 길이 되었습니다. 빙하기로 인한 전환기에 멸종 위기에 몰렸던 호모 사피엔스가 농경을 시작하면서 대도시를 건설하고 제국을 세워 번성했으며, 이상 기후로 인해 위기에 몰린 인류가 가축에서 기계라는 새로운 모빌리티의 장을 연 것 처럼, 이번 팬데믹의 때 아닌 자전거 붐은 이러한 인류 극복의 역사가 반복되는 현상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경훈 해설위원

이경훈 해설위원은 ‘피기’라는 블로그 닉네임으로 더 잘 알려진 사이클리스트이자 사이클 전문 해설가로 국내 사이클링의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루비워크샵은 이경훈 해설위원과 함께 자전거에 대한 심도 깊은 컨텐츠, 프로 사이클링에 대한 신선한 시각을 함께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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