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AL밀라노 산레모 프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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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프리마베라, 모뉴먼트의 시작

300km에 육박하는 거리로 프로 대회 중 가장 긴 거리를 달려야 하는 밀라노 산레모. 이탈리아 최대 도시인 밀라노에서 출발해 프랑스 국경 근처에 있는 해안 마을인 산레모에서 피니시하며 5대 모뉴먼트 경기 중 하나로 봄을 알리는 첫 대회이기 때문에 라 프리마베라 La Primavera(봄) 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스프린터의 모뉴먼트로 꼽힐 만큼 평지가 대부분인 레이스로 7시간이 넘는 지루함을 지닌 대회라는 오명 또한 갖고 있지만 '라 클래시치시마'라는 별명처럼 클래식 중의 클래식으로 꼽히기도 하며, 마지막 30km는 그 어느 대회보다 눈을 뗄 수 없는 흥미진진한 경기가 펼쳐지는 반전의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300km의 초장거리 클래식 모뉴먼트

밀라노 산레모의 가장 큰 특징은 역시나 거리. 300km에 달하는 유일한 초장거리 프로 레이스로 피니시 직전 작지만 연속적인 오르막으로 인해 스프린터 뿐만 아니라 클라이머, 펀쳐, 심지어 그랜드 투어 스페셜리스트까지 대부분 스타일의 선수들이 우승을 노릴 수 있는 대회이기 때문에 '완주하긴 쉽지만, 우승하긴 가장 어려운 대회'로 꼽힙니다.


Milano Sanremo 2017 photo Luca Bettini/BettiniPhoto©2017


특히 평지가 대부분인 레이스임에도 불구하고 장거리 라이딩 이후의 후반 오르막들이 반복되면서 수많은 어택을 위한 발판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장거리 주행 능력, 오르막 등판, 어택의 타이밍, 스프린트 능력 등 뛰어난 선수가 되기 위한 종합적인 능력이 모두 요구되며, 이는 스프린터, 클라이머, 그랜드 투어 라이더, 코블 레이서 등 할 것 없이 다양한 선수들이 우승 후보로 꼽히는 만큼 5대 모뉴먼트 중 가장 열린 가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지난 14번의 대회 모두 각기 다른 선수들이 우승을 차지했던 기록이 이를 증명하며, 수많은 레이서들이 우승을 위해 도박과도 같은 시도를 던지는 피날레는 그 어느 대회보다 카오스적인 피니시라인을 자랑합니다.



이탈리아 최대 도시인 밀라노에서 출발 후 지중해로 향하는 내륙을 통과, 첫번째 관문인 투르키노 고개 정상의 터널을 지나 첫 내리막을 시작합니다.  푸른빛의 그림자라는 이름의 파소 델 투르키노의 내리막은 꽤 위험한 편이며 최근 이곳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경기가 고속도로로 우회하면서 역대 최장의 밀라노-산레모가 펼쳐지기도 했습니다.  레이스의 반을 지나왔지만 아직 145km 가량 남은 상황.

이후 티레니아해 연안의 절벽길을 따라 서쪽으로 향하며, 세개의 '카피', 카포 멜레, 카포 체르보, 그리고 카포 베르타라는 작지만 빠르게 넘는 언덕을 지나게 되면서 250km를 달린 상당한 피로감과 함께 본격적으로 레이스가 시작됩니다.



치프레사와 포죠, 대회의 클라이막스

"치프레사"와 "포죠" 밀라노 산레모에서 가장 중요한 두 오르막으로, 급경사는 아니지만 피니시 직전 아우터 체인링으로 4~500와트를 뿜어내며 오를 수 있는 구간입니다.  이 중 치프레사는 밀라노 산레모에서 가장 까다로운 언덕으로 마지막 브레이크어웨이 선수들이 잡히면서 펠로톤의 속도가 급격하게 오르는 양상을 보입니다.

동시에 클라이머들과 펀쳐들이 어택을 시도할 수 있는 발판으로 250km의 주행으로 너덜거리는 순수 스프린터들의 다리를 노려 급격한 리듬변화를 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곳에서의 어택이 우승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방심해선 안되며, 남아있는 메인 그룹에선 치열한 포지션 싸움에서 벗어나는 순간 그날의 우승은 힘들어집니다.



마지막 오르막인 포죠는 정상부터 3km의 내리막, 그리고 2km 가량의 평지만 더 가면 피니시이기 때문에 선수들 간의 끊임없는 어택과 자리 싸움이 진행되는 곳입니다. 포죠는 해발고도차가 140m 가량에 3km 정도의 길이로 경사나 높이 측면으로는 별다른 특별할 점이 없지만 사이클링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오르막 중 하나로, 시작부터 클라이머들의 강한 어택이 전개되며 다들 업힐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 곳입니다. 



특히 좁은 입구와 오르막 헤어핀으로 인한 아코디언 효과가 심해 첫 20명의 위치에 들지 못하면 어택에 반응 하지도 못하고 뒤에 갇히기 때문에 치열한 몸싸움이 벌어지며, 오르막임에도 불구하고 속도가 빨라 코너에서 브레이크를 다들 잡아야 할 만큼 역동적인 밀라노-산레모의 아이콘입니다. 


아일랜드 인으로서는 최초로 밀라노 산레모에서 우승한 숀 켈리. 1986


업힐보다 내리막이 더 유명하기도 한 포죠는 언제나 사고가 발생한다고 할 만큼 위험하고도 급격한 헤어핀 코너가 기다리는 곳. 원데이 레이스의 전설인 숀 켈리가 과거에 엄청난 속도로 포죠를 내리꽂으면서 우승을 차지한 전적이 있으며, 모든 것을 감수한 야심가들이 일말의 두려움 없이 2cm 폭의 타이어에 운을 시험하는 무대입니다. 


2018년의 피날레를 장식한 빈첸초 니발리


일주일, 혹은 3주간의 그랜드 투어에서 활약하는 클라이머들, 아르덴 클래식의 짧은 급경사에 최적화된 펀쳐들, 코블 클래식에서 활약하는 파워 라이더들, 그리고 평지의 순간 속도에 집중하는 스프린터들 모두가 우승 후보로 경합하게 되는 독특한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2020년 밀란 산레모의 우승자 와우트 반아트


장거리 체력전으로 인해 자연적으로 선별 작업이 이루어지며 펑크, 혹은 낙차로 인해 잠깐이라도 뒤쳐지거나 팀원의 도움 없이 자리 싸움을 지속하다보면 결국 후반부에 손실을 메꾸기가 힘들어지게 되는, 카오스에도 불구하고 모든 변수에 계산된 대응이 필요한 대회이기도 합니다.

수많은 타입의 선수들이 각기 다른 전략으로 입성하기 때문에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승부.  7시간, 300km에 달하는 유일한 초장거리 레이스이지만 막상 승부는 1cm의 차이로 결정되는 아이러니의 혼돈이 기다리는 밀라노 산레모입니다.



이경훈 해설위원

이경훈 해설위원은 ‘피기’라는 블로그 닉네임으로 더 잘 알려진 사이클리스트이자 사이클 전문 해설가로 국내 사이클링의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루비워크샵은 이경훈 해설위원과 함께 자전거에 대한 심도 깊은 컨텐츠, 프로 사이클링에 대한 신선한 시각을 함께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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